불혹과 지천명 시공에서

그 시절에 서보다/송영욱

수성하와이. 2010. 10. 29. 00:02

   시절에 서보다/송영욱

 

 

 

 


     구름 뜬  개울이 깊어 보여

     못 건너 망설이 던

     아카시아 꽃 지는

     늦은 봄날.


     애기들 간(肝) 탐낸다는

     산속 문둥이가 무서워

     지름길 두고

     긴 신작로 따라  소나기 피하며

     뛰던 그 여름날.


     배 골아 죽은 아낙이

     솥 작다 울어대는 깊은 밤

     쪼그라드는 가슴 되잡고

     살금살금 기던

     행상 집 앞엔,          

     밤새껏 시퍼런 도깨비불이

     황토마루 노인과

     춤을 추던 가을날.


     썰매 타다  빠져

     언 발 녹이려  피운 모닥불에        

     보름 장에 할머니가

     사다 주신 나일론 양말에 

     구멍을 크게 내고 

     시렸던 발 깨지던  그 겨울날.


     캐러멜 같은 달콤한 향(香)에 사족 못 쓰며,

     구충제(驅蟲劑) 인줄 알면서도

     침 흘리며  맛보던  그 시절.

     이모(姨母)를 못 찾고 헤매던

     넓은 운동장.

     하늘에 닿아 보이는

     거대한 포플러 나무들.

     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던

     텅 빈 교실

     뼈 속까지 파고드는

     어머니와 다른

     예쁜 처녀 선생님의 향기.

 

     이제는, 작은아이들과

     세월 속으로 흐른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.


     송영욱 수필선<개불알꽃에 매달린 작은 십자가 >중에서