그 시절에 서보다/송영욱
구름 뜬 개울이 깊어 보여
못 건너 망설이 던
아카시아 꽃 지는
늦은 봄날.
애기들 간(肝) 탐낸다는
산속 문둥이가 무서워
지름길 두고
긴 신작로 따라 소나기 피하며
뛰던 그 여름날.
배 골아 죽은 아낙이
솥 작다 울어대는 깊은 밤
쪼그라드는 가슴 되잡고
살금살금 기던
행상 집 앞엔,
밤새껏 시퍼런 도깨비불이
황토마루 노인과
춤을 추던 가을날.
썰매 타다 빠져
언 발 녹이려 피운 모닥불에
보름 장에 할머니가
사다 주신 나일론 양말에
구멍을 크게 내고
시렸던 발 깨지던 그 겨울날.
캐러멜 같은 달콤한 향(香)에 사족 못 쓰며,
구충제(驅蟲劑) 인줄 알면서도
침 흘리며 맛보던 그 시절.
이모(姨母)를 못 찾고 헤매던
넓은 운동장.
하늘에 닿아 보이는
거대한 포플러 나무들.
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던
텅 빈 교실
뼈 속까지 파고드는
어머니와 다른
예쁜 처녀 선생님의 향기.
이제는, 작은아이들과
세월 속으로 흐른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.
송영욱 수필선<개불알꽃에 매달린 작은 십자가 >중에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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