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인의 마음

취해보니 알겠다

수성하와이. 2011. 10. 2. 09:42

취해보니 알겠다
- 柏堂 김기진 -

취해보니 알겠다
똑바로 걷기보다는 비틀비틀 걷는 것이 쉽다는 것을
삶도 그러하지 않을까
올곧게 살기보다는 되는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을까

취해보니 알겠다
발 따로 몸 따로 걷는 다는 걸
삶도 그러하지 않을까
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

취해보니 알겠다
온통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는 것을
삶도 그러하지 않을까
세상사 현실이 어질어질 돈다는 것을

취해보니 알겠다
메스꺼운 속 토해보니 시원하다는 걸
삶도 그러하지 않을까
속속들이 맺힌 것 버려 버리면 편한 것을

취해보니 알겠다
다음날 몸 쑤시고 아프다는 걸
삶도 그러하지 않을까
환락으로 살면 몸 버리고 가슴 아프다는 것을

취해보니 알겠다
망각의 대가로 비어버린 주머니 채울 길 막막하듯
삶도 그러하지 않을까
허송한 세월 돌이킬 길 막막하다는 것을

취해보니 알겠다
먹은 만큼 마신 만큼 취하게 된다는 걸
삶도 그러하지 않을까
쌓은 만큼 베푼 만큼 걷을 수 있다는 것을.

-柏堂 김기진 시인의 시집
'일출처럼 노을처럼' 중에서 -